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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아버지

02/03/14

아버지가 폐암으로 남은 여생은 1개월

현재 투약 중인 약이 효과가 있다면, 4개월.

하지만 아버지 본인은 단순한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의식이 뚜렷하지만

점점 쇠약해져 갈 것이다

의사에게 아버지의 남은 날짜에 대한 선고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노력을 생각해, 알리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한달 혹은 수개월, 본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 한다.

아직은 의식도 확실한데다, 그다지 변함이 없기에 실감이 없다.

같은 경험 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보냈어?

부모님에게 남자 친구 소개할 수 없게 된 게 안타깝다

그건 그거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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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들을 때까지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검사 받기 위해 입원한 날이 아버지를 집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니,

믿을 수 없다.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니,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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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20년 전 금연한 이래 한번도 피지 않으셨다.

덧붙여, 아버지는 4년 전에도 수술을 받은 적 있어 폐암 이란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알리지 않은 건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것

4년간 여러 가지 고액의 민간요법을 동원하며 고생했지만,

결국 이렇게 된 것이다.

굳이 현재 상태를 아버지가 눈치채는 걸 원하지 않는다. (감기라고 믿고 있으니까)

아직 살 의욕이 남아 있는 아버지에게, 죽음이 확정됐다는 걸 알리면

남은 수개월, 이 이상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 했으니까.

이건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마쳤다.

감이 좋으시니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일상을 가장해야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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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에 앉아 있는데, 내가 빌려준 워크맨에서 ♪♪ 좀 더 시간이 느리게 갔다면 ♪♪ 하고

호리우치 타카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링겔을 맞으며 듣고 있었는데, 그 가사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어제,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사이 좋게 지내고 있던 사람이 돌연 사망해 낙담하고 계신다

불필요한 게 생각나서 주무실 수 없다고.

무리도 아니다.

선고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여러가지 어드바이스를 듣고 실제 사례를 보는 동안

제일 괴로운 건 역시 환자 본인이란 걸 알았다.

역시 말하지 않길 잘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자주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건강했을 때 같이 여행이라도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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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아버지가 알아 버렸다

오른손이... 저리기에 주치의에게 물어봤더니, 알려주었다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반쯤 웃고 계셨다.

암세포가 임파선에 전이해, 미처 제거하지 못한 것이 점차 커져 손 쓸 수 없는 지경으로 갔다는 것 같다.

이전에 받은 수술에서 암세포를 전부 제거하지 못했다는 게 의사의 말이다.

이후 더 이상 유효한 치료법은 없고, 항암제도 단지 위안용일 뿐 효과가 없다는 말도 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건강한 동안 집으로 가는 게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다.

현재, 미열이 계속되고 있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처지는 아니지만

한번 더.... 한번 더 집으로 돌아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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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진실을 알고 난 후 급속히 기력을 잃어버리셨다.

갑자기 여기 저기 아프다 하시기도 하고.

그리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단 생각 때문인지, 오늘은 어머니에게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매일,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마, 아버지의 본심이라 생각한다.

나도, 될 수 있는 한 옆에 있기로 했다.

이 스레에서 체험담으로, 약 때문에 이상한 말을 해도 이해해라는 말이 도움이 됐다.

가족이 병에 걸렸을 때, 반동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도 알 것 같고.

하지만 아버지는 절망했어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계신다.

부모는 언제, 어느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식에게 많은 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203

당분간 며칠동안 유언 같은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은 아버지 앞에서 울진 않았다.

제일 힘든 건 아버지다. 그러니까 아버지 앞에서는 울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에서 울고 있어. 미안








207

몇십년이나 소원하게 보낸 "삼촌"과 연락이 닿았다.

내가 기억하는 삼촌은 술을 마신 채 택시를 타고와선, 택시 요금 없으니까 대신 내라며

아버지와 싸움을 했던 것 뿐이다. 아이 때 기억이지만, 상당히 무서웠다.

어제, 병실 앞으로 엽서가 한장 도착했다.

엽서의 마지막에는 "살아 있는 한 서로 힘내자, 잘 지내" 라고 적혀 있었다

삼촌도 아버지의 일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손을 떨며 글자를 쓴 것인지 끝으로 갈수록 알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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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신의 병세를 알게 되고 나서, 맞게된 링거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어제부턴 새로 혈액제재라는 걸 맞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간호 부장이, 독실로 바꿀 것을 권했지만 그간 여러가지 이유로 거부해왔었다.

하지만 오늘부턴 독실로 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29일이 아버지 생일이다. 그때까지는 의식이 확실히 남아 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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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참고가 되고 있어, 기입해 주는 사람들 고마워

가족이 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직 활기찬 나이인데, 정말 믿기지 않아서.

여기 기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납득 당해야 믿을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지만, 1개월이 지나는 사이 점차 반신 마비에.

연일 맞고 있는 링겔로 인해 몸에 상당히 무리가 가고 있지만 우리를 신경 쓰고 있다.

그래도 가능한 곁에 있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집에 있을 때는 반발만 해서 감사의 말을 전한 적은 없지만,

의식이 있는 동안에 전하고 싶어. 조금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이 걷히고 나서야 그 존재감을 알게 되었다.








241

여기 기입해 주는 사람들 전부 친절해서 매우 기뻐

어제는 처음으로, 아버지 몸을 닦아 드렸다.

이런 간단한 것에, 이렇듯 기뻐해 준다면

매일이라도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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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제부터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밖에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등이 아프다고 하실 뿐, 나머지는 얼굴 표정 뿐.

생각보다 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 같다.

대신 미간의 움직임이나 등을 문지르면 기분이 좋은 것인가? 정도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어제 집에 가기 전에 차안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펑펑 운 덕분인지 오늘은 평범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문득,"환생이 있다곤 하지만, 정말 환생한 사람을 본 적 없어"

라는 말을 하셨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아버지는 다시금 태어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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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를 보러 갔더니 어머니에게서 기쁜 보고를 들었다.

최근 3일 정도 간호부장이 아버지에게 "뭘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었는데

"목욕하고 싶다"라고 대답하신 것 같다. 내일 독실의 간호용 욕실에서 몸을 씻을 예정 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입원해 있는 동안 열이 계속 났기 때문에 몸은 닦았지만, 목욕은 한 적 없다.

욕실에 들어가도 될 정도의 상태가 된 다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너무나 기뻐서 귀가하는 차 안에서 울어 버렸다.

담당 의사 선생님, 간호사, 아버지에게 힘을 준 사람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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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버지의 생일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적어도 케이크 라도 사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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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쇼트케이크를 먹으며 생일 축하 할 수 있었다.

고마워.

오늘, 아버지에게서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침대 옆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사촌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 라 물어도 따로 기억하진 않았다고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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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걸어 오는 걸 보았다.

"에! 여기까지 걸어 올 수 있는 거야" 라며 무심코 외쳐 버렸다.

간호가 도움이 된 건지

다만 의사에게 들은 선고만 아니라면 호전된 아버지의 상태에 기뻐하겠지만,

역시나 그것이 신경쓰여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엷게나마 기대가 솟아 오른다.










819

간병이 끝난다고 편해질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도망칠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 아버지의 딸로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담담히 지켜 보려 한다.

아버지가 병마와 싸워 가는 모습, 그리고 그걸 옆에서 돕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부모님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내리는 이 가르침

온전히 내 마음속 깊이 새겨두려 한다

역시, 부모님은 존경스럽다.


이제와서 눈치채도 늦었지만.







820

엄마와 독실에서 모포를 깔고 같이 잤다.

언젠가, 가족 여행차 들렀던 페리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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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가셨다.

한밤중에 갑자기 혈압이 내려 가신 게 원인이었다.

지금 겨우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괴롭은 것이 아닌 너무나 편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격려해준 사람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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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에서 점화 버튼을 누를 때,"상주님"이란 말에 어머니는 나를 찾아

"함께 누르자"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버튼으로.

하지만 누르기 직전에 어머니는 손을 떼셨다.

그래서 결국 내가 눌렀다.













901

벌써 7일이 지났다.

내일은, 병원에 인사하러 갈 생각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남긴 화분 때문 아직 생각할 엄두 없으신 것 같다.

주지가, 철쭉을 사랑한 사람이 5월, 철쭉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죽은 것은 드물다면서, 계명에 "皐(사츠키=철쭉)"라는 문자를 넣어 주셨다.












914

삼촌에게서 다시 엽서가 왔다.

엽서에는 후회와 앞으로 우리 가족의 염려를 비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이가 나빴다곤 했지만, 그건 이제 옛일









958

어머니는, 자기 암시를 하는 게 능숙하다고 할까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된 듯 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아버지가 떠오른다.

입원 중의 일. 그 이전의 일.

하지만 생각이 떠오르면 미칠 것 같아, 될 수 있는 한 골똘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어째선지 어머니가, 5년 후에 여행을 같이 가잔 말을 하셨다.

그 때 여비는 모두 내가 낼 생각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꾸준히 저금해야 겠다.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 해야지.








985 02/06/08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왔다.

친구의 어머니는, 2년전 바로 이날 돌아 가셨다.

같은, 6월 8일. 친구 가족에게 있어선, 양극단의 하루.

좋은 날도 있으면, 나쁜 날도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다.

나는 이 사소한 이야기를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991

결국 사람이면 누구나 걷게 되어 있는 길

후회하고 주저 앉기 보단 훗날 다시 만나 씨익 웃으며

'즐거웠다구'

되돌려 줄 수 있는 삶을 살아 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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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참여 했고 이후 2CH에 발 붙이게 된 원인이 된 스레드 입니다.

>>1의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7년째, 다시금 고인의 극락 왕생을 빌어 봅니다.